독서모임 후

'어린 왕자'와 '야간 비행'을 읽고

독서 모임에서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이 발제되었다. 내친김에 오래 전부터 읽으려 했던 '어린 왕자'도 빌렸다. 사실 그의 동화를 전문으로 읽는 건 처음이었다.

시간을 절약해주는 약이나, 별을 세는 사람, 술꾼 등 어디선가 익히 들었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생각보다도 더 노골적으로 어른들의 쓸쓸함을 드러냈다. '어린 왕자'를 다 읽었을 즈음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린 왕자가 해주는 말에 너무 큰 감동을 받은 채, 지금부터 어른의 관점을 버리고 본질을 찾아 떠나는 걸 생텍쥐페리가 바랬을까? 곧장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 같았다. 어디있었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 한 줄기의 햇살조차 받지 못해 빛이 바랜 쓸쓸함이 있다는 사실을. 그것을 잠시라도 꺼내 조금의 동정을, 약간의 안타까움을 느끼고, 다시금 현실을 살아갈 때 그러한 사실을 마음 한 켠에 간직하길 바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실했다는 사실조차 잃어버리는 건 얼마나 큰 비극일까. 그런 비극을 그는 차마 보기 어려웠던 것 같다. 잠시나마 위로받은 나는 어린 왕자에게 짧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야간 비행'을 펼쳤다. “이제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았고, 아무런 진동이나 떨림도 없었고, 자이로스코프와 고도계와 엔진의 회전 속도가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기지개를 켠 뒤 의자 등가죽에 목을 기대고는 비행하면서 깊은 명상을 시작했다. 거기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하나의 희망을 음미하는 것이다.”

  • '야간비행' 中.

얼마나 서정적인가. 책의 어디를 펼쳐도, 아무 문장이나 읽어도 예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장을 조용히 따라가고 있노라면 밤 하늘을 비행하는 기분이 나를 몽롱하게 한다. 심지어는 죽음 위를 비행하는 파비앵의 마지막 모습에서도 나는 초월적 아름다움을 느꼈다. '야간 비행'의 마지막 장에서, 리비에르는 파비앵의 실종에도 불구하고 유럽행 비행기를 출발시킨다. 결연한 의지. 그로 하여금 나는 카뮈를 떠올린다. “신마저도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 않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침묵하는 하늘을 우러러볼 것 없이 있는 힘을 다해 싸워주길 바랄지도 모른다.”

  • '페스트' 中.

그는 앞으로 무엇이 다가올지는 모른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투쟁함으로써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뿐이다. 그러한 투쟁도 대단한 사명감이나 자존심에 의한 게 아니다. 그저 우연 중에 그 자리에 서있을 뿐. 그러한 싸움에 영원한 승리는 없다. 패배의 연속에서 얻어내는 일시적인 승리. 그러나 그것이 싸움을 멈춰야 할 이유는 못 된다. 카뮈와 생텍쥐페리가 보여주는 반항은 자꾸만 나를 부풀게 한다. 그들의 문학을 읽을 때면, 왠지 인생을 다 알 것 같다고 외칠 수 있는 담담함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