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정상에서
바람이 시원합니다. 축축했던 등도 금세 말라버리고 추위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돌아가는 해는 마중나가봤어도, 들어오는 해를 맞이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 혹여나 해가 서운해할지도 몰라 꼭두 새벽에 짐을 챙겨 나갔습니다. 일출까지 곧 30분정도 남았습니다. 아까는 부엉이인지 올빼미인지, 산을 오르는 내내 들렸던 울음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찌르르 하며 아침을 맞는 새소리가 들립니다.
온통 새까맣던 천장은 파란 하늘과 까무잡잡한 구름으로 점점 구분되어 갑니다. 저 편에 짙게 깔린 구름 너머로 붉은 빛이 자욱합니다. 얼핏 보면 사라지는 듯 하면서도, 잠시 물을 마시고 다시 바라보면 더 밝아진 불빛으로 인해 태양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가만히 바라보면 모르겠다만, 찰나의 순간을 놓은 뒤 다시 바라보면 그 차이가 느껴집니다. 어쩌면 대상을 더 잘 알기 위해서는, 단순히 계속 관찰하는 게 답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등산을 하면 머리가 맑아진다는데, 나에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인 것 같습니다. 랜턴 빛에 의존하며 걸어갈 땐 분명 눈 앞의 돌에만 신경썼는데, 이렇게 정상에서 푸르러가는 하늘을 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할수록,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답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고민의 답이 더 큰 고민이라니요. 가혹하다고 느끼면서도, 그것이 진정한 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하지 않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마는 언젠가 큰 후회로 돌아올 것 같다고 막연하게 느낍니다. 아침 새들의 찌르르하는 소리가 더욱 커지고, 까마귀 무리가 저만의 신호를 주고 받으며 서로 뭉치고 있습니다. 이제 일출까지 10분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처음 정상에 올랐을 때만 해도 도시의 불빛이 살아 숨쉬는 듯 했는데, 어느새 태양빛에 서서히 가려지기 시작합니다. 생기있었던 도시는 되려 폐허처럼 빛을 바랜 것처럼 보입니다. 자연에게서 빌려온 생기를, 다시금 자연이 가져간 것처럼 느꼈습니다. 도시의 생명력을 빨아들인 하늘은 붉은빛부터 푸른빛까지 저마다의 색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제 태양이 떠오르네요. 저편 너머에 구름이 짙게 깔려있어 10분을 더 기다렸습니다. 태양을 온전히 맨 눈으로 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입니다. 생각보다도 더 동그랗고, 반질반질한 표면이 참 신기합니다. 달은 가만 보면 표면에 무늬가 보이는데, 태양은 그런 게 없습니다. 우리 생명의 근원이 저 태양이라는 생각을 하면 참 경외스럽습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참 무섭다고도 느낍니다.
내려가야겠습니다. 벌써 아침이 다 되었네요.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못했던 수첩 속 삐뚤빼뚤한 글씨도 이제는 잘 보입니다. 다시, 눈 앞의 돌에 집중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