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의 겨울눈

백목련의 겨울눈 위로 눈 알갱이들이 내려앉았다. 언제 이렇게 보송보송해진 걸까. 늘 어딘가 비어있는 듯한 겨울 냄새를 맡고 난 뒤에야 소복이 눈이 쌓이곤 했는데. 올해 겨울 향이 굼뜬 걸까, 아니면 먼저께 왔음에도 알아챌 경황이 없었던 걸까. 조금은 늦게 겨울이 왔음을 알아차린다.

앙상해진 가지를 볼 때면 느끼는 무상함은 지겨울 법한데도 매번 참 낯설다. 사계절 속 생명의 흐름을 또렷이 인식한 지도 꽤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다. 내 몸도 앙상해져야 친근해지려나. 자연스레 세월을 한 겹씩 모으다 보면 무상함도 미련 없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꽤 슬플 것 같다. 지금의 두려움과 초조함 모두 먼 훗날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란 말이 내게는... 내게는 너무 서글프다. 그럼에도 스스로 넌지시 읊조린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거야.

다시 오늘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구원은 내일에 없으니까. 새해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년의 다짐을 적지 않는다. 12월 31일에는 일찍이 잠에 들고 싶다. 그러다 17일 즈음 나 홀로 11시 55분부터 하루가 바뀌는 걸 기다리고 싶다, 이유도 없이. 산 중턱에 올라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기보다, 한적한 오후에 등산로 중간 쉼터에 앉아 떠도는 구름을 보고 싶다. 산 정상에 오른 뒤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곧장 내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남은 일상을 살고 싶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기쁠 테니 조금은 만끽해야지.

나는 얼마나 바뀌어있을까.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후회들을 남길까. 이제는 수없이 되뇌일 자기 합리화와 변명들이 기다려진다. 어떤 핑계로 다시금 내 삶의 궤적을 바꾸게 될까. 전혀 예측할 수 없지만, 또 다짐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만 하나쯤은 바라고 싶다. 그 길이 온전히 나의 삶이길.

언젠가 유유히 헤엄치는 거북이의 등을 쓰다듬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