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깊은 사색없이 단순 소박하기는 쉽다. 그러나 깊이 사색하면서 단순 소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을 기만하면서 낙천적이기는 쉽다. 그러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으면서 낙천적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 서준식 옥중서한

드르륵거리는 바퀴 소리에는 저마다의 기대가 부풀어있었다. 짐만큼이나 가득한 설렘을 감추지 못한 사람들이 분주히 제 갈길을 갔다. 남쪽의 따뜻한 공기를 대비한 얇은 옷가지 안으로 바람이 산들거렸고, 낮곁의 마모된 햇살은 피부 위로 비스듬히 바스라졌다. 홀로 덩그러니 놓여있음을 실감했다.

해방감과 외로움이 서로를 바라본다. 이럴 때 늘 생각한다. 고독은 삶의 동반자이면서도,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지금 당장 함께 하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리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추울까. 책을 꺼내든 시모노세키의 한적한 공원에서 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운동과 산책을 꾸준히 하기. 잠을 푹 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기. 무거운 하루에는 편히 쉬기. 의미가 적은 행동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나라는 존재는 어떤 결과보다 소중하며, 지금 이 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음을 기억하기. 지금은 당연한 습관이 된, 공부하며 알아낸 소중한 사실이다. 군대라는 구속된 환경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준 바탕들. 이를 토대로 더욱 소중한 것들을 손에 쥐었다. 경외로 가득찬 세상 속에서 겸손을 자각하기. 편견에 갇힌 건 아닌지 끝없이 의심하기. 그렇게 자연스레 지녔던 행복과 낙관을 깊이 고민했다.

다만 목적없는 삶이 너무 오래되었다. 내가 만든 관성에 목이 졸렸고, 쓰다 지우길 반복한 희뿌연 생각의 덩어리는 언어로 빚어지지 못했다. 자신의 글을 쓰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비참한가. 반복되는 아침의 피로와 한밤의 권태 속에서 질식하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그저 해야만 하는 일들을 가까스로 붙들며 성취감을 갉아먹었다. 끙끙거리며 토해낸 글마저도 남의 언어에 기대어 끄집어냈을 뿐이다. 죽을 듯 달리고 난 뒤 찾아오는 고요함만이 유일한 창가였다.

걷고, 또 걸었다. 낯선 풍경과 낯선 음식, 그리고 낯선 언어. 어딜 가도 동떨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머리가 헝클어지도록 세차게 불어오던 해풍. 달빛에 역광을 받은 거무스름한 밤구름. 사람이 없는 한적한 거리를 걸으며, 내겐 여행이 필요했음을 깨닫는다. 눈 앞에 놓인 사소한 것들을 카메라 안에 담았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정해진 목적 없이, 얽매인 데 없이, 발길 가는 대로.

대단한 성취도 없다. 죽을 듯 노력한 것도 없다. 그저 책을 읽었다. 책 속에 정답이 있다는 말이 와닿는다. 단순히 책 내용을 정리하고 의의를 생각하며 배우려는 게 아닌, 책이 건네는 말을 들으며 글과 교감하는 과정. 형식적으로 대단하다며 심포니를 백 번 칭찬해봤자 진심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결국 반쪽짜리다. 삶도 마찬가지다. 하루의 리듬을 느낄 수 없다면 그건 반만 살아있는 셈이다. 눈을 뜨고 움직이는 동안 숨을 느껴야 한다. 박동을 지녀야 한다. 하늘을 보며 걷고, 지나가는 나무에게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살아있는 것을 사랑해야 한다.

이번 여행은 내게 삶의 리듬을 다시 돌려주었다. 내가 지닌 행복과 낙관은 여전하다. 방식도, 개념도. 다만 나의 태도 차이다. 압생트 풀 향기에 숨이 막혀 아찔해하는 까뮈를 생각한다. 타루의 입을 빌려 인생을 다 알겠다고 말한, 기적적일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는데 있어 디오니소스를 거론할 필요는 없다며 마음껏 발산해보이는 그의 생명력. 나 또한 다 알겠다. 여전히 고치며 배우길 반복할, 의문투성이인 이 빌어먹을 인생을. 내가 죽은 뒤 살아있을 생명들을 질투한다. 다음 세대를 시기한다. 내가 보고 느끼지 못할 미래를 갈망한다. 도저히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기엔 삶을 너무 사랑하니까.


한번은 친구와 저녁의 시간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언제부터가 저녁이며, 또 언제까지를 저녁이라 할 것인가? 하는 조금 쓸데없는 물음에서 시작이 된 말들이었습니다. 친구는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이 저녁의 시작이며, 더는 어두워질 수 없을 만큼 어두워졌을 때가 저녁의 끝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저는 저녁밥으로 무엇을 먹을지, 먹는다면 누구와 먹을지 고민을 하는 순간부터 저녁이 시작되며, 밥을 다 먹고서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두었을 때쯤 저녁이 끝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각자 내어놓은 답의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었지만, 재미 삼아 사전에서 ‘저녁’이라는 말을 찾아보았습니다. ‘저녁: 해가 질 무렵부터 밤이 되기까지의 사이.’ 사전적 정의라고 하기에는 다소 추상적인 풀이를 보고 친구와 저는 동시에 웃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저녁은 오지 않을 듯 머뭇거리며 오는 것이지만, 결국 분명하게 와서 머물다가 금세 뒷모습을 보이며 떠나갑니다. 물론 저녁이 아니더라도 오고가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 다시 저녁에게, 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