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
녹음(綠陰)이 가득한 시기입니다. 푸를 녹과 그늘 음을 쓰는 녹음은 초록 잎이 우거진 나무의 그늘이란 뜻입니다. 호수 앞 벤치에 앉은 채 陰(그늘 음) 대신 音(소리 음)을 써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방에 넘쳐나는 초록을 담는 눈을 감는대도, 두 귀로 담뿍 흐르는 草綠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둑한 밤에도 여전히 녹음의 계절이라 부를 수 있을테지요. 차츰 일교차가 식어가는 요즘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곧 다가올 무더위를 대비해 에어컨 필터를 청소해도 좋겠습니다. 혹은 밤잠을 설치게 할 모기를 쫓는 약을 구비해도 좋겠고요. 만약 모기에게 물렸다면 손톱으로 긁지 않길 바랍니다. 상처가 덧나며 더 간지러운 악순환이 반복될테니까요. 참, 식물을 기른다면 뜨거운 햇빛을 조심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얼마 전 후덥지근한 창가에서 잎이 축 쳐진 후쿠시아가 도와달라고 아우성을 친 일이 있었거든요. 다행히 선선한 공간에 놓으니 금세 빳빳해졌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땡볕 아래서 시원한 방으로 달아난 나를 보는 것 같아 작게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괜히 친근감이 생겨 냉수 한 모금 하라고 부어주고 싶었지만 굳이 작은 생명을 앗아갈 필요는 없겠지요. 아직은 밤이 시원합니다. 공원이나 하천의 벤치에 앉아 멍때리기에도, 혹은 걸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에도 좋은 공기입니다. 그렇게 조금은 바쁜 일상 사이에서 밤의 중턱을 방황했으면 합니다. 일행도, 노래도 없이 홀로 떠돌며 뚱딴지같은 공상을 해주세요. 그리고 내게 말해주세요. 오늘은 숨이 너무 가쁘다면 내일, 혹은 모레, 아니먼 기약없이 미뤄진대도 괜찮습니다. 그때는 내가 당신에게 가겠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축축한 밤공기를 대화삼아 무언의 산책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월이 끝나갑니다. 정신없이 흘러간 봄을 아쉬워하면서도, 돌아보면 웃음이 나오는 바보같은 순간들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나는 엉뚱한 길로 돌고 돌았던 발자국을 간직하겠습니다. 그 속에는 늘 삐뚤빼뚤하게 걷다 넘어져야만 닿을 수 있는 풀내음이 숨쉬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