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언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뭉치고 뭉쳐도 도저히 언어의 모양으로 다져지지 않는 것들. 그럴 때면 예술을 배우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든다. 말문이 막히는 순간 춤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해변가에 앉아 여유를 즐기며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절대 언어만으로 나타낼 수 없을 텐데. 내가 그려낸 드로잉 속에 기분을 담아내는 상상을 한다. 지하철에 앉아 무표정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삶의 권태를 볼펜 잉크로 구불구불하기. 좋아하는 원두를 추출하며 느껴지는 기분 좋은 향을 노랑빛 파스텔로 꾹꾹 누르기. 잠에 들기 전 끝없이 뻗어나가는 생각의 가지가 얽히고 섥히며 감아올리는 불면...은 아무래도 어렵겠다. 이제보니 예술을 배워도 표현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겠다. 대체 생각한다는 게 뭔지. 생각을 생각하며 궁금해하다가도, 또 다시 일상의 할 일로 돌아가고. 그렇게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죽음의 문턱 앞에 서있게 되는 걸까. 내일은 잎이 축 쳐진 미니 바이올렛의 뿌리를 확인해야겠다. 과습인 것 같은데 썩었다면 뿌리를 좀 정리하고 새로 심어줘야지. 외출 나가서는 시집을 사야겠다. 우울과 고독, 그리고 사랑을 받아들인 단단한 내면의 소유자가 써내려간 시를 읽고 싶다. 오랜만에 자기 전 명상을 하자. 엉뚱한 생각으로 빠졌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그것도 숨을 크게 세 번 쉬며, 시간의 묵직한 테를 이마에 얹은 채 최후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