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산책

아침에는 산책을 했습니다. 공기는 탁하지만 꽃눈을 뚫고 나온 생명이 활짝 폈는지 궁금해서요. 선분홍으로 맺힌 홍매화와 두텁게 솟아오른 목련은 여전히 봄의 경계를 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습니다.

회양목에 갖가지 벌레가 웅웅거리며 내려앉습니다. 꿀을 먹으러 온 녀석들 덕분에 무심코 지나칠뻔한 소박한 꽃을 바라봅니다. 조그마한 배짧은꽃등에부터 붕붕거리며 날아온 쌍살벌까지 연노란 꽃을 사이좋게 하나씩 차지합니다. 그 사이에는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깡충거미가 있습니다. 거미줄을 치지 않는 이 거미는 제 몸보다 큰 잎 사이를 잘도 깡총거리며 먹이를 찾습니다.

처연하게 늘어진 능수버들 가지에는 애벌레같은 꽃이 통통하게 피어났습니다. 노란 꽃밥이 주섬주섬 달린 걸 보아하니 수그루입니다. 암수딴그루인 버드나무는 수꽃만 피우는 나무와 암꽃만 피우는 나무가 구분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단아한 연녹색을 띠는 게 암그루입니다.

지나오다 분주히 움직이는 동고비를 마주쳤습니다. 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워 조그만 나무 구멍 안으로 들어가더군요. 문이 참 둥글다 싶어 신기하게 쳐다보는데 마침 나가려는 동고비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혹여나 공들인 집을 버리지는 않을까, 구경하는 걸 그만두고 반대편으로 빠르게 달아납니다.

어디론가 날아간 흰뺨검둥오리들은 해가 완전히 가시면 푸드덕거리며 이 호수로 다시 옵니다. 조만간 가족을 꾸려 앙증맞은 날개로 뒤뚱거리는 새끼들을 달고 다니겠지요. 올봄은 따뜻하고, 또 먹을 것도 풍부했으면 좋겠습니다.

거대한 우주를 생각하면 우리의 삶은 먼지와도 같아 겸손해진다는데, 어쩐지 나는 자그마한 것들을 바라보며 겸허함을 느낍니다. 자세히 봐야만 알게되는 자연이 실은 그 무엇보다도 큰 걸까요. 밤하늘 너머 먼 은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듯이, 눈 앞의 봄은 온 몸으로 받아내고도 자꾸만 넘쳐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