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2일

다시금 새들이 노래한다. 밤 사이 단단히 얼었던 흙은 쇠딱따구리가 부지런히 나무를 쪼는 동안 질퍽한 흙이 된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터벅터벅 오갔던 길 위에서 예상치 못한 감촉을 느낀다. 푹신한 흙 위에 진하게 발자국을 남긴 신발은 황토색으로 얼룩져있다. 일교차가 부린 심술 덕에 반사적으로 짜증 섞인 탄식이 나오지만, 이제는 코 앞을 하얗게 물들이는 입김을 볼 수 없다. 보도블럭 위에 신발 밑창을 소묘하다가, 저 멀리서 까치가 제 몸 너비만한 나뭇가지를 물고 둥지로 향하는 걸 본다. 겨우내 앙상해진 매화나무 가지엔 그간 남모르게 키워낸 겨울눈이 터질 듯 부풀어있다. 길 한복판 위에서 뻔뻔하게 공사 중인 저 까치 둥지가 더욱 견고해지고 나면 매화도 본격적으로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 것이다. 사방에 교묘히 남겨진 봄의 흔적이 그제서야 내게로 온다. 봄은 조용히 걸어왔다가 금새 어디론가 숨는다. 그 수줍음덕에 여태껏 찰나의 순간만을 봄으로 여겼지만, 이젠 따스한 햇볕과 화려한 꽃 식물만 봄의 옷자락이 아니란 걸 안다. 화려한 막이 지난 뒤 강한 조명만 내리쬐어도 여전히 우리 곁을 수줍게 맴돌겠지. 예정된 찰나에 종속되지 않은 채 나는, 온 계절 아래에서 너를 느낀다.


2월 12일에 글을 올리고 나서

그간 꽤나 공들인 글을 올리니 어딘가 겸연쩍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는가? 아니요. 표현이라도 제대로 했는가? 글쎄요. 그럼 독창적이고 재밌는가? 전혀요!

어떤 곳으로 여행하든 내게로 향하는 길임을 알고나니 글쓰기도 하나의 여행이란 걸 깨달았다. 분명 글을 쓰게 된 동기나 그 과정은 꽤 달랐는데도 결론은 어째 비슷비슷해 보이니까! 내 삶을 사랑하고 현재가 가장 행복하며 궁시렁 궁시렁. 고작 글 몇 개 쌓였다고 매너리즘에 빠진 걸까. 하지만 별 수 없다. 수많은 문장으로 아무리 표현한대도 그건 내가 아닌 걸.

그렇다고 글 자체가 의미없다는 허무주의적 생각은 딱히 매력적이지 않다. 꽤 대단한 걸 알아낸 듯 잘난 기분이 들지만 실은 아무것도 일궈낸 게 없으니까. 그래서 이번엔 이 찝찝한 기분을 즐기기로 했다. 뒤로 갈수록 문단 간 이음새는 엉성하고, 소리내어 읽을 때마다 고칠 것 투성이인 글을 냅다 올렸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이번엔 특히 과정이 너무 특별했어서, 더 나은 단어를 찾는데 고심할 필요를 못 느꼈으므로.

글이 온전히 내 손을 떠나보내고서 다시 일상을 둘러봤다.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이도저도 아닌 목표들이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져있다. 이제 가지치기를 해야지. 다시 한 번 지구의 자전이 멈춰도 괜찮을 거란 믿음을 가지고서, 그래 화성학아 넌 좀 나중에 보자. 철학도 잠시 안녕. 책 사는 것도 좀 자제하자. 돈도 너무 많이 쓰지만 읽어야 될 게 너무 과하다. 당분간 프랑스어랑 시집만 달고 살아야지. DELF는 7월에 보는 걸로. 그리고 걷자! 날이 많이 좋아졌으니 그토록 좋아했던 산책을 지금보다 더 많이 해야지. 다시 천천히, 나로 돌아가자.


낯선 단어의 나열은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눈으로 흘겨본 뒤 소리내어 읽고, 다시 한 획씩 음미하며 종이에 써내려간다. 내가 시를 읽는 방식이다. 말하기에도, 만져보기에도 흠이 없다.

한강의 단어는 무겁기도, 꽤 가볍기도 하다. 고뇌로 고통받는 삶은 가벼운가 무거운가. 살아가기를 포기한 이는 무거움을 견디지 못한 것인가, 혹은 가벼움을 참지 못한 것인가. 물리적으로 명료한 중력의 문제는 문학에서 도통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된다.

슬픔과 비애가 숨을 옥죄어온다. 무거운 눈물은 그녀를 적시며 흉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흠뻑 젖어 가벼워진 몸으로 위태로웠던 과거를 토해낸다. 당신을 넝마로 만든 흠집을 응시하며, 나는 이 모든 행위가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왜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되뇌이던 지난 날의 울음이 당신의 목구멍까지 메우지는 못했으므로. 그녀의 처절한 숨 안에 가득한 사랑을 본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