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즐거움
앎의 즐거움이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짜릿하고 타오르는 사랑의 즐거움처럼 화려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땀 흘리는 노동의 즐거움처럼 격렬하지 않다. 그러나, 은은하게 가져다주는, 소소하게 나타나는 앎의 즐거움이란, 대체 불가능한 즐거움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자정이 지났을 때 즈음, 하늘에서 저마다 반짝이는 별이 보였다. 핸드폰을 통해 무슨 별들인지 확인하며, 무명(無名)의 별들에게 이름을 불러주었다. 사방에 여러 푸른 별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붉게 빛나는 화성이 주의를 끌었다. 왜 다른 별과는 다른 색을 내는 걸까 하며 궁금해졌다. 순간,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축적되어 왔을 지식에 대해 생각했다. 원시의 인간이 붉게 빛나는 별을 보며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유의 고통을 겪었을까. 한 인간의 삶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영겁의 시간을 거쳐 지식을 쌓고, 또 쌓아 올리며 지금 내게 도착했을 거란 생각을 하니 문득 경외심이 들었다. 우리는 그 지식 위에서, 그들의 사유 속에서 앎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구나.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무지의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구나. 그러고 나서, 호기심을 통해 세상을 탐닉한 이 세상의 모든 학자들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살아 숨쉬는 이뿐만 아니라, 찰나의 순간에 잠시 생명으로 태어나 후대를 위해 지식을 축적하고 떠난 이들마저도 나는 아름답다고 느꼈다. 존경하다 못해,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그들을 위해, 나는 글을 써내려 갔다.
나는 이 세상에서 나타나고, 또 떠났을 모든 학자들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보고 그저 지나칠 식물을 관찰하며 생명체의 아름다움을 탐닉한 식물학자가 아름답다. 좋은 소리를 듣고 귀 기울이며 더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 헤맨 음악학자가 아름답다. 당연하다 생각할 사물의 움직임을 측정하며 규칙을 발견해낸 과학자가 아름답다. 사색을 현실로 끄집어 이야기를 만들어 낸 인문학자가 아름답다. 모든 것에 대해 ‘왜’라는 질문으로, 그 자체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파고드는 철학자가 아름답다. 나는 그들이 던진 질문과, 그들이 찾아낸 답 아래 존재한다. 그들이 찾아낸 아름다움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놀라워한다. 후대에게 더 나은 학문의 길을 위해 고통을 감내한 그들을 나는 존경한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 열정을 잃지 않고 노력한 그들을 나는 경외한다. 이제는 학문의 길을 걷는 이들이 바보가 되는 시대에, 학문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을 존경한다. 고통의 위에서, 아름다움을 향해 정진하고 싶어하는 그들을 나는 경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