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제주도
내가 사랑하는 섬, 제주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소만큼 답답한 게 없다. 그래서 여행할 때면 늘 건물과 관광지 표시가 없는 밋밋한 장소에서 인적 없는 카페를 찾는다. 보기에 고즈넉하고 조용하면 곧장 그곳으로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시킨 뒤 소소한 대화를 이어 나간다. 멋진 풍경을 끼고 사는 이들은 여유와 행복이 가득해서일까, 자꾸만 낯선 이에게 남는 즐거움을 베푼다. 나는 고작 쑥스러운 미소와 고맙다는 말, 그리고 다시 오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만 반복하며 씁쓰레하게 맴도는 미안을 머금은 채 발길을 돌릴 뿐, 결국 무엇 하나 해준 것 없이 받기만 한다. 품속의 호의는 구름을 타고 오는 동안 아주 커져서, 일상에서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게 되는 추억으로 마음 한 켠에 자리 잡는다.
1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따뜻한 날씨를 즐기다가 고즈넉하고 사람 없는 카페를 찾았다. 넓은 야외 마당에 곧장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의자를 보니, 여기서 당장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한 욕구가 솟았다. 마침 카카오 지도를 확인해보니 후기는 고작 2개뿐. 부리나케 카페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사람 한 명이 지나기에 약간 모자란 인상을 주는 문을 넘어서면 더 아담한 공간이 나온다. 3-4평즈음 될까? 낯선 이가 우뚝 서 있기에 부담스러운 곳. 그래서 커피를 시킨 뒤 조용히 구석에 앉아 카페 안 공간을 즐긴다. 좁은 문 틈새로는 반짝이는 햇볕이 수염 틸란드시아를 바스락거리고, 분주히 드립 커피를 준비하는 손짓은 그 자체로 공간의 일부가 된다. 원두 가루가 불어나며 카페 안이 커피 내음으로 차오를 때, 목조 인테리어와 식물의 배치, 그리고 커피 향을 머금은 햇빛이 공간 사이로 잘게 부서지는 걸 보고선 오늘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고 느낀다.
커피를 내리는 그녀가 말을 건넨다. 오늘 날씨가 정말 좋아요. 그러게요, 반팔로도 돌아다닐 수 있겠어요. 여행하러 온 거예요? 휴가나와서 여기 왔어요. 성산 정말 예쁘니 많이 둘러보고 가요. 소소한 대화 속에서 갑자기 마카롱 하나를 고르라는 호의를 받는다. 늘 쑥스럽고 또 미안한 마음이 드는, 제주도에서 참 많이 받았대도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사랑스러운 정. 난 이 선의를 진실로 애정한다.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사는 이들은 무언가를 흔쾌히 베풀 만큼 행복한 사람이구나.
밖에 놓인 파라솔을 피고 그 아래 의자에 앉아 책을 읽던 와중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군인? 군인 맞지? 네 맞아요. 우리 아들도 군인인데, 어디서 복무해? 나이 든 남성은 손에 든 커피 한 잔을 내게 건네며 작은 이야깃거리를 이어 나간다. 커피 한 잔을 시키고서 디저트와 커피 한 잔을 더 받다니. 무조건적인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르겠으면서도 감사하게 받아야만 완성되는 마음인 걸 알기에, 그저 쑥스러운 미소와 고맙다는 말을 건넬 뿐이다. 커피 향이 너무 좋아요. 풍경도 좋고, 정말 여기 자주 오고 싶네요. 내가 기억할 테니까 자주 오고, 이곳 올 일 있으면 들러. 꼭 그럴게요.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이번 해에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혹은 내년 여름까지 미뤄질지도. 확실히 말할 수 없는 나중의 시간을 어스름푸레 바닷바람에 흘려보낸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약속할게요. 시간이 많이 지나더라도 다시 이 땅 위를 밟으며 당신의 마음을 떠올리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