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쓴 글

제법 춥고 건조해진 숨이 겨울을 알려주네요. 그래도 정말 겨울이 왔음을 느끼는 건 귤이나 붕어빵을 먹을 때 같아요. 직접 맛봐야 받아들일 수 있달까요.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뜨끈한 국물을 마시면 늘 손을 소매 안으로 꾸깃꾸깃 넣고서 포장마차로 향하던 발걸음이 생각나듯 맛과 향은 내 마음에 아주 와닿아요. 스물 두 번째 겨울은 여느 해보다 느낌이 사뭇 다르네요.

유난히 추위에 약한 내가 겨울을 사랑하는 건 눈 덕분이에요. 눈이 소복하게 쌓인 거리에는 사계절 내내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이국적인 내음이 나요. 세상에 가득한 눈 냄새를 맡으며 나는 겨울의 중허리로 걸어 들어가죠. 다시 맡기 전까지 떠올리지 못하는 아득하고 뭉근한 향, 그 안에는 은은하게 지피어 오르는 잉걸불의 온기가 있어요. 올 한 해 나는 그 불씨처럼 숨을 쉬며 살았나봐요.


씨앗은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특정한 환경에서 발아하도록 진화했어요. 온대 지방에서는 춥고 건조한 겨울의 공기를 흠뻑 마신 뒤 다시금 땅 속으로 온기가 스며들어야만 싹을 틔우죠. 시린 추위가 없으면 싹조차 움트지 않는데 진정한 삶은 오죽할까요. 무엇이 행복인지 삶의 흐름에 질문조차 안 하고 그저 바쁘게만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는 이제 연민을 가져요. 어느 유명인이 무슨 사고로 죽었는지는 열심히 수군대지만 정작 내 죽음에 기댈 때 삶의 현재를 바라볼 수 있음을 모르고, 의미없는 활자 속에서 몰라도 상관없는 정보를 주워담기 급급하면서도 무엇이 나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진짜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는 걸 시간 낭비라 생각하죠. 여행에 쓸 돈은 사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술에 돈을 들이키며 몽롱한 정신으로 독서할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게 이상하지는 않나요? 실은 그게 행복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살지 말라는 건 더더욱 아니에요. 다만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 나와는 많이 다른 듯 해요. 나는 싹을 틔워낸 사람과 함께 늦은 오후에 온 몸의 긴장을 풀고 우리의 치열했던 행복의 여정을 늘어놓으며, 친절함의 가치와 미래 세대를 위한 걸음에 대해 생각할래요.


짧막한 무인전철의 끝에서 불빛들을 바라본다. 도로 위로 붉고 희고 노란 빛들이 유연하게 미끄러진다. 반대편에서 지나치는 하행선. 틀어지는 방향에 관성을 느끼며 옆으로 기우는 게 무뎌질 때즈음, 적막함 사이로 선명한 상현달이 보인다. 무엇 하나 도움없이 우뚝 선 반달을 보니 이 모든 게 실없는 장난처럼 생각되었다.

어디론가 흘러가는 흐름 속의 세포들. 저 멀리에 열심히 움직이는 자동차도 세포를 태우고 어딘가로 흘러간다. 세포가 세포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사는 거고 왜 죽는 걸까? 나도 몰라. 이 세상에 끝이 있을까? 있겠지. 그걸 못 보고 죽다니 아쉽다. 그렇구나. 넌 안타깝지 않아? 조금. 그런데도 어떻게 그리 담담해? 그러게.

어떤 세포는 자신을 남긴 채 죽는다. 어떤 세포는 흔적도 없이 홀로 떠난다. 어쨌든 전부 언젠가 숨쉬기를 멈춘다. 그게 모든 걸 장난으로 만들고, 또 하나하나 진중하게 값어치를 매긴다.


나는 내 나라를 사랑합니다. 이 사랑은 피가 끓는 영웅담이나 벅차오르는 관악기의 울림에서 비롯된 게 아닙니다. 그저 함께 숨쉬는 이들과 같은 언어를 쓰고 비슷한 문화를 공유한다는 사실 덕분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를 미워하고 욕하는 듯 보여도, 분명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됨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결국 세상은 선의지에의 이끌림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곳을 영원히 떠난대도 나는 내가 자라며 보고 배운 곳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