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복귀
휴가 복귀 날이다. 커튼 밖에서 넘쳐흐르는 자연광이 좁은 방을 환하게 비춘다. 아직 충분히 잠이 들지 않았는지 두개골이 머리를 지그시 눌러 두통을 얹어놓고, 눈꺼풀은 아침이고 뭐고 내가 닫으면 아무튼 영업 끝이라는 배짱으로 드러눕는다. 가까스로 눈을 뜨고서 천천히 자세를 고쳐 앉는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이제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올지, 새로 산 카메라를 들고 한창 더 돌아다니고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딱히 무언가에 초점을 두지 않았던 시선이 북북이와 야호로 향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젯밤, 엎어질까 품에 꼭 안고 당근 해온 식물들이다. 앞으로 함께 군 생활할 녀석들이다. 빛이 잘 드는 사무실 한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금세 마음이 좀 바뀐다. 생각해보면 그리 나쁘진 않을지도.
안에 있으면 아쉬운 게 많긴 하다. 꼭 보고 싶었던 전시를 놓친 적도 있고, 좋아하는 등반이나 탐조도 마음대로 못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여행을 갈 수도 없다. 덕분에 지난 10일간의 일정이 더 가치 있었다. 오랜만에 만지는 돌의 감촉, 정신없이 전시를 보고 나왔을 때 다리의 저릿한 감각, 순간을 프레임 안에 욱여넣는 셔터음, 낯선 얼굴이 약간 친숙해지는 새로운 인간관계의 어색한 즐거움. 온몸으로 느낀 모든 걸 사랑하지만 그중에서도 이 땅 위에 숨 쉬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장 사랑한다. 소박하고 작은 것들을 이토록 충만하게 느낀 적이 있었나.
이제껏 왜 미디어를 멀리하려 했는지 알았다. 책을 읽고 글 쓰는 게 단순히 유튜브를 보는 것보다 왜 더 나은지 설명하지 못했다. 침몰해가는 배 위에서 죽는 그 순간까지 마약에 취해 쾌락을 느끼며 삶을 마감하는 걸 납득하지 못했으나, 당당하게 틀렸다고 말할 근거가 없었다. 어차피 남은 날들이 전부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라면 모든 게 무의미해 그런 이분법이 통하지 않으니까. 이젠 다르다. 내 삶의 이유는 행복이다. 모든 행복은 삶에의 몰입에서 온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를 진실로 다해 살아가는 매 순간이 내 모든 의미이자 나라는 존재 그 자체다. 미디어는 현실에서 나를 떨어트린다. 해보진 않았지만 마약도 마찬가지일 거다. 자연에 끌린 이유를 알았다. 자연만큼 현실에 몰입하기 좋은 공간이 없으니까.
이젠 아무래도 좋다. 이곳에서 무슨 자격증을 따고 외국어 실력이 얼마나 성장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일과 시간에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여기 사람들과 더 나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더 많이 심심해하는 것, 당연했던 걸 돌려받는 순간 느끼는 반가움을 만끽하는 이 모든 몰입이 내 삶의 목적이다. 요즘만큼 내가 나였던 적이 없다. 내 행복은 약간의 외로움과 고독함, 그사이 가득한 놀라운 것과 즐거움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어진 억압 속에서 자유롭다고 느낀다. 진심으로, 정말 많이 행복하다.
오늘 나는 들어간다. 복귀한 뒤에는 개인 정비 시간에 알랭 드 보통의 을 마저 다 읽고, 부족하다면 다음 날 사무실에서 틈틈이 보겠지. 4시에 퇴근한 뒤에는 3km 달리기 단축을 위해 잘 가꿔진 호수와 테니스장을 빙글빙글 돌 거다. 글감이 떠오르면 곧장 아이패드를 열고, 딱히 뭔가가 없다면 그저 마음껏 공상하며 심심해할 계획이다. 그렇게 똑같은 날을 반복하며 주말을 기다리고, 휴가를 기다리며 여행을 기다리는 보통의 군인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