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알다

이제는 인생을 다 알 것 같아요. 작년에 알았고, 오늘에서야 다 알고, 시간이 흐르면 다시 알겠죠.

어디서 와 어디서 생을 마치는지 파도에게 끝없는 호기심이 생기면서도 그 울림에 나는 눈을 감고 느껴요, 이 곳 위에 잠시 머무름을.

세상에 이름조차 제대로 못 남기고 흙으로 으스러질 걸 알아요. 개성조차 남에게 쉽게 정의될 만큼 단순하죠. 주름지고 굽어가며 다음 세대를 위한 밑거름이 됨을 알아요. 그러면서도 내 이야기는 여전히 특이하고 별나다고 생각해요.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으스대는 걸 알아요. 겁쟁이임을 들키고 싶지 않으려 하고, 남과 비교하며 함부로 재단해요. 훔친 지식을 내 것처럼 포장하기도 하죠. 늙어가는 게 허망해요. 인내 하나만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케 만들죠.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인다는 문장이 있던데, 난 허무와 절망을 안다고 느끼면서도 사랑하지 못하겠어요. 어쩌면 안다고 착각하는 걸까요.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그들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언제쯤 모든 걸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지금은 나를 더 사랑할게요. 스킨답서스와 알로카시아를 사랑하고, 새로 산 카메라와 찍어내는 사진을 사랑할게요. 책을 사랑할게요. 달리면서 느끼는 숨가쁨을, 글쓰기의 망연함을, 알고 지냈던 친구들의 얼굴과 목소리와 새로운 이들의 이야기를 사랑할게요. 등반의 공포와 설렘을 사랑할게요. 아직은 어설프지만, 길 위에 피어난 잎의 허무함과 바스러지는 낙엽의 서글픔도 전보다 조금 더 사랑해볼게요. 세상엔 웃음 지을 일투성이고, 보이는 모든 것을 신기해하고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사랑할게요. 동시의 무표정과 초점 없는 눈동자도 사랑할게요. 리외와 타루, 리비에르와 뫼르소를 떠올리며 우울과 고독도 전보다 더, 그리고 조르바를 앞으로도 열정적으로 더 많이, 뜨겁고 가쁘게 사랑할게요. 지금까지 따랐던 아주 보통의 행복을 더 많이 사랑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