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난 영화에 문외한이다. 잘 만든 영화가 왜 좋은지 면밀하게 분석하지 못한다. 대신 영화를 보고난 뒤 ‘와, 잘 만들었군’ 하며 감탄할 수는 있다. '헤어질 결심'이 그랬다.
처음 보고나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화면 구성. 극장이 아니라 사진전에 온 듯했다. 보는 내내 감탄했고 어떤 장면은 눈물이 나올 만큼 좋았다. 영화를 본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아주 공들여 찍었다는 걸.
두 번 볼 땐 치밀함에 감탄했다. 아주 정교하게 짜여진 영화란 걸 알았다. 모든 장면엔 이유가 있었고, 사소한 대사 하나에 담긴 심리 묘사는 세밀했다. ‘마침내’라는 단어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심장을 쿵 내려앉게 했다가 다시 들뜨게 한 ‘마음’이란 단어는 어떻고. 마음 속 깊이 여운을 남기는 대사가 가득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무언가 해주고 싶어진다. 지나가듯 한 말도 마음에 깊이 새긴다. 서래의 어색한 말을 기억했다가 농담으로 그녀를 웃게 한 해준이나, 피가 많은 사건이 싫다는 말에 구역질나는 현장을 청소하고 시체를 정리하는 서래나 그 노력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둘의 사랑은 착착 들어맞는다. 경찰서에 갈 때 서래가 좌회전을 하면 해준도 좌회전을, 우회전을 하면 우회전을 한다. 초밥을 먹고 치울 때도 호흡이 척척 맞는다. 그러나 마지막 해안가 장면에서 서래가 우회전을 할 때 해준은 좌회전을 한다. “당신의 사랑이 끝난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사람 사이의 관계는 엇갈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래서 서래는 ‘헤어질 결심’을 한다. 다른 남자를 만나 잊으려는 막연한 시도는 실패했다. 이 땅에서 온전히 헤어지려는 확고한 결심. 죽어야만 그녀의 사랑은 끝이 난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그렇게 그녀의 사랑이 끝난 순간 그의 사랑은 시작됐다.
영화가 마냥 기교적이진 않다. 복잡하다고 느낀 연출도 다시 보니 되려 직관적이었다. 다만 처음 본다면 스토리 전개를 따라가고, 대사의 여운을 느끼며 인물의 감정에 이입하는 게 버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게 장점이 되는 영화가 있다. 흔쾌히 한 번 더 보며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들. '헤어질 결심'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