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첫 글

안녕하세요. SNS를 잘 활용하지 않는 탓에 몇 달 만에 게시글을 작성합니다. 5월 초 스튜디오 샤를 출연한 뒤, 저마다의 고민을 갖고 온 분들이 팔로우를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DM이나 메일을 통해 오는 질문에만 답장했을 뿐, 딱히 게시글을 작성하지는 않았습니다. 종강한 뒤 여유가 생겨서 생각해보니 이것이 하나의 불친절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로 인해 본인 스스로 질문할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주저한 분들도 계실 테고, 아무 활동 없는 SNS를 보고 의심해 질문하지 않으신 분들도 분명 있으셨겠죠. 늦었지만 지금이나마 그런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그리고 저를 팔로우 해주신 분들에게 응원이 되고자 작성해보는 글입니다. 제 생각보다도 훨씬 다양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입시를 준비하며 겪을 수 있는 고민부터 시작해 저와 비슷하게 자퇴를 선택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정말 값진 이야기들을 듣고 난 뒤에, 제 생각을 펼쳐내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고민을 이야기해주신 분들께 먼저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이어지는 글은 글쓰기 수업의 기말 대체 과제를 조금 수정해 올리는 글입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조언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저마다의 관점에서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서사문을 올립니다. 어려운 시기에도 공부하느라 힘드시겠지만, 그 과정에서도 본인을 위해 한 번쯤은 하늘을 바라보셨으면 합니다. 꼭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길 바라고, 혹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과정을 통해 보람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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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땅만 바라보며 걸을 때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는 잠을 잤고, 실기 시간에는 땀을 흘려가며 철을 녹여 붙였다. 섭씨온도 5000도에 달하는 용접 열은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피로하게 만들었다. 사람 두 명이 겨우 들어가는 답답한 용접 연습실에서 나는, 언제나처럼 아침과 저녁을 이어 붙였다. 밖으로 나오면, 가로등만이 유유히 학교를 비추었다. 어두운 학교 안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땅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 맨 처음 하루가 있었고, 한 달이 있었고, 반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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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준비반까지 합격한 채 승승장구하며 남들이 바라는 성공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갈림길이 없는 오직 앞으로 가는 길만이 앞에 놓여 있었다. 저 앞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행복해 보였고, 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나 또한 저렇게 되리라 다짐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 것이고, 남들이 원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것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갔다. 나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여유 넘치게 걸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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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땅만을 바라본 채 반년이 지났다. 좁은 용접실 속에서, 문득 이 길이 옳은지에 대해 수많은 물음을 떠올렸다. 답을 구하려고 할 때마다, 나 스스로가 비참해졌기에 그만두었다. 내가 선택한 길은 틀리지 않아야 했다. 그래야만 후회하지 않을 수 있고, 또 행복할 수 있었다. 아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길을 가기에 바빴다. 그렇게 내가 눈을 감는 그 날까지, 나는 바빠야만 했다. 치열하게 목표를 향해서 달리다 보면 그런 후회 따위는 쉽게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달리던 와중, 잠시 숨을 고르려 용접실 밖으로 나왔다. 마침 이전부터 쉬고 있었던 친구들이 있었다. 이어서 무리에 합류하려던 참에,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누군가 용접한 철을 보며 잘했다느니, 못했다느니 라며 시시덕거렸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온기라곤 전혀 없는, 차가운 쇳덩어리를 야만스러운 쇠집게로 들어 올렸다. 순간 괴리감이 들었다. 왜일까? 나 혼자만 용접하고 있다는 배신감에? 아니면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보고 칭찬했다는 열등감에? 몰랐다. 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척한 걸지도 모른다. 아직도 나는 소름 끼치는 그 기분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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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하겠다고 선언했다. 허우대 멀쩡한 우등생의 폭탄선언이었다. 학교에선 멍청한 짓이라 손가락질했고, 부모님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갑자기 왜 그러는지 물어봐도 설명할 수 없었다. 겨우 설명하더라도, 모두가 이해하지 못했다. 일단 확실한 건 내 편은 없었다. 끝내 못 이기며 자퇴서에 사인해준 부모님도, 이젠 더는 내 편이 아니었다. 남들에게 나는 패배자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쨌든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었으니까. 그거 하나로 족했다. 아침 8시에 집을 나왔다. 겨울 해가 세상을 느슨히 밝힐 때쯤 도서관에 도착했다. 그리고 여태까지의 내가 해왔듯, 아침과 저녁을 이어 붙였다. 그렇게 적막한 겨울밤을 거닐며 집으로 향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올 때, 머리 위에서 난데없이 찌르르하며 새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올려다본 하늘 위는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푸른 이파리가 사방을 에워싸고, 그 사이엔 은은한 빛을 내며 고즈넉이 자리 잡은 보름달이 있었다. 그림과 같은 풍경에 나는 넋을 놓은 채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하루 한 번쯤은 꼭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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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힘들고 지칠 때면 무작정 걸어 나와 하늘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사방이 훤히 드러나는 풍경을 보며, 그때 그 풍경을 다시 떠올린다. 내 앞길은 사방으로 갈래가 펼쳐져 있다.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도 하나의 길이었다. 두려워했던 수풀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고, 그 속에서 나는 하나의 삶을 찾았다. 남들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 아닌, 진정으로 내가 행복한 삶을. 남들이 가라 하는 길이 아닌, 내가 개척하는 길을 걸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이미 나는 나를 몇 번이나 밀어붙였다. 우울함에 빠지기도 했고, 허망함에 모든 걸 놓은 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과거와 달리,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었기에.